몸에 나쁠 것처럼 생긴 음식만 모았습니다.
죄책감은 셀프입니다.

*빵을 그릇 삼아 손으로 뜯어먹는 파티 안주 — 딥까지 싹싹 긁어먹느라 손이 멈추질 않습니다.

*냉장고 야채칸을 통째로 털어 넣었더니 죄악스럽게 예뻐졌습니다. 맛은 그보다 더 셉니다.

*찐 고구마와 케일에 건크랜베리와 캐슈넛을 흩뿌리고 타히니 레몬 드레싱으로 마무리했습니다. 한나절 재워두면 더 맛있어지는, 죄 없는 죄악.

*당근 한 조각도 마법처럼 변신시키는 향신료 한 스푼. 죄책감은 없고 향만 진하다.

*드레싱 붓고 버무리기만 하면 끝 — 죄책감은 냉장고 두고 왔습니다.

*겉은 바삭, 속은 포근한 감자 해시가 식빵 위에서 자꾸 손이 가게 만듭니다. 죄책감 대신 마늘 향만 살짝 넣었습니다.

*라이스페이퍼 속에 죄를 말아 넣었습니다 — 알싸한 와사비 오렌지 소스가 마지막 방점을 찍습니다.

*밀가루도 치즈도 없는데 피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습니다. 크러스트를 식힐 동안 참는 게 이 레시피의 유일한 고난이도 구간.

*곁들임 요리 주제에 자꾸 메인 자리를 넘봅니다 — 된장 소스 하나로 벌어진 작은 참사.

*된장 한 숟갈에 다시마 육수 조금이면 끝. 죄책감은 안 넣었는데 밥그릇은 계속 비워집니다.

*고기 한 점 없이 끓여낸 진득한 라구. 죄책감은 장바구니 영수증에도 없습니다.

*냉동실 자투리 채소들이 명절 식탁의 메인 요리로 승진하는 순간 — 크림 한 방울 없이 이렇게 진하다는 게 유일한 반전이다.

*아침부터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 와플입니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커민과 강황으로 데운 퀴노아에 아삭한 채소를 켜켜이 얹었다.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숟가락이 멈추지 않는다.

*초록색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곤란합니다 — 그릇 바닥까지 긁어먹게 되니까요.

*냄비 하나, 있는 채소 다 때려 넣기 — 그게 전부입니다. 렌틸콩과 보리가 은근히 든든해서 숟가락이 계속 갑니다.

*겉모습은 얌전한 고구마 케이크, 칼을 대는 순간 숨어 있던 베리가 쏟아집니다. 오븐도, 죄책감도 필요 없습니다.

*선드라이드 토마토 소스에 훈제 두부와 올리브, 매콤한 페페론치니를 얹어 바삭하게 구운 미니 피자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겉은 폭신 속은 매콤, 포크 하나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튀김기 없이 오븐 하나로 완성하는 손가락 크기의 죄악. 케첩에 찍어 먹다 보면 접시가 먼저 빕니다.

*고소한 크림소스에 숟가락이 자꾸 향하는데,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 냉장고 속 콩과 채소, 밥 한 그릇이면 완성되는 게으른 날의 구원투수.

*와인 한 잔 졸이듯 뭉근히 끓여낸 적양배추와 콩, 죄책감은 애초에 장바구니에 없었습니다.

*샐러드인데 자꾸 손이 갑니다. 죄책감은 안 넣었고, 새콤달콤함만 잔뜩 넣었어요.

*달걀 한 알 없이도 이렇게 폭신할 일인가. 냉장고 야채칸을 탈탈 털어 넣어도 죄책감 대신 고소함만 남는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