몸에 나쁠 것처럼 생긴 음식만 모았습니다.
죄책감은 셀프입니다.

*조개는 한 마리도 안 들어갔지만 바다 내음은 살아있습니다. 버섯과 캐슈크림이 만든 진한 한 그릇, 죄책감은 국물에 녹아있지 않습니다.

*붓기만 해도 접시가 통째로 사악해지는 훈제 토마토 소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냄비 하나에 콩과 옥수수를 매콤한 엔칠라다 소스로 졸이고 바삭한 토르티야 조각을 섞어 넣었습니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겉은 살짝 그을리고 속은 폭신한 고구마에 메이플 피칸을 얹었습니다. 죄책감은 빼고 손이 멈추지 않는 재주만 넣었습니다.

*아침부터 초콜릿이라니, 오늘 하루는 이미 이긴 겁니다. 슈가파우더까지 뿌리고 나면 더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.

*치즈는 한 장도 안 들어갔는데 이렇게 진한 게 말이 됩니까. 포크가 멈추지 않는 게 유일한 함정입니다.

*냉동실과 찬장에 굴러다니던 콩과 채소를 죄다 쏟아부었을 뿐인데, 완성되는 건 근사한 토마토 수프. 죄책감 대신 뿌듯함만 남았습니다.

*여섯 가지 채소를 매콤달콤한 레드커리 소스에 몰아넣고 볶았을 뿐인데,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.

*설탕 한 톨 안 들어갔는데 이렇게 달아도 되나 싶은 당근 케이크. 죄책감은 반죽에서 빼놓고 시나몬 향만 챙겼습니다.

*감자를 겹겹이 쌓아 캐슈 크림 속에 푹 재운 뒤 오븐에 구운, 포크가 멈추지 않는 손님상 히든카드입니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딥. 죄책감은 병아리콩 삶은 물에 흘려보냈습니다.

*콩을 으깨서 후무스처럼 뭉근하게 버무렸을 뿐인데 도시락 반찬에서 샌드위치 필러로 승진했습니다. 죄책감은 넣지 않았습니다.

*새빨간 소스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. 콩과 후무스로 낸 크림인데, 죄책감은 파업 중.

*감자와 토마토 사이에 켜켜이 숨긴 렌틸 페이스트 — 포크가 닿는 순간 죄책감 대신 육즙 같은 감칠맛이 흐릅니다.

*콜리플라워 한 통을 썰지도 않고 통째로 넣어 뭉근히 조립니다. 식탁에 올리면 다들 고기는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.

*달걀도 오일도 없이 이 고소함이라니, 마요네즈 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.

*훈제 파프리카와 치폴레가 사악하게 매캐한 향을 깔면, 메이플시럽이 슬쩍 끼어들어 단맛으로 무마시킵니다. 뭘 찍어 먹어도 이 냄비 앞을 못 벗어납니다.

*마요네즈는 듬뿍, 죄책감은 쏙 뺐습니다. 피크닉 바구니에서 제일 먼저 동나는 그 감자샐러드.

*새콤하고 아삭한 식감 뒤에 죄책감은 하나도 없습니다 — 숟가락 대신 포크가 멈추지 않는 사이드.

*훈제 향 가득한 바비큐 템페, 번 사이에 끼우는 순간부터 숟가락 대신 손이 바빠집니다. 죄책감은 소스에 넣지 않았습니다.

*커민과 강황 향이 진하게 밴 뭉근한 스튜. 냄비 앞을 못 떠나는 게 유일한 부작용입니다.

*감자를 눌러 붙이고, 뒤집고, 또 눌러 붙였습니다. 죄책감 대신 바삭함만 남았습니다.

*빵인데 밀가루가 없다는 반전 — 죄책감 대신 바삭함만 남았습니다.

*죄악은 후무스에, 상큼함은 라임에 맡겼습니다. 숟가락째 퍼먹어도 아무도 안 말리는 딥.